생태적 영화를 향하여
2001

스콧 맥도날드 작성
박규재 옮김
Toward an Ecological Cinema (Scott Macdonald)

The Garden in the Machine: A Field Guide to Independent Films about Plac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1.

해당 글을 번역 및 기재할 수 있게 자료를 제공해 주신 스콧 맥도날드 교수께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
 
   로즈 라우더가 자신의 16mm 카메라를 갖게 되었을 무렵, 그녀는 이미 여러 해 동안 16mm 필름 루프를 다루며, 영화 구조의 최소 단위가 오스트리아의 페터 쿠벨카가 이론화한 것처럼 단일 프레임인지 밝히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실제로는 “각기 다른 프레임의 부분들이 스크린에서 보이는 것을 이루기도 한다”고 보았다. 영화의 미시적 단위에 대한 라우더의 탐구는 1977년 이후, 그녀가 자신의 이미지를 직접 촬영하게 된 뒤에도 계속되었다. (이 초기 실험에서 그녀는 여러 종류의 필름 리더를 사용하고 투명한 셀룰로이드 스트립에 직접 작업하며 프레임에 구멍을 뚫고 필름 스트립을 따라 스크래치를 내거나 선을 그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녀의 초기 영화들 가운데 일부는 비교적 길게 이어지는 쇼트를 사용하는 반면, 다른 작품들은 동일한 구도를 유지한 채 초점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 가며, 정밀하게 구성된 '스코어(譜)'에 따라 이미지를 싱글 프레임 단위로 기록하는 공들인 과정을 수반했다. 이러한 접근은 서로 다른 종류의 정원에 초점을 맞춘 세 편의 영화에서 하나의 결실로 나타났다.

    〈뤼 데 탱튀리에 Rue des Teinturiers〉(1979)를 위해, 라우더는 아비뇽에 있는 자신의 집 2층 발코니 창문에 카메라를 설치해, 작은 발코니 정원을 지나 맞은편의 뤼 데 탱튀리에(거리)를 바라보도록 했다. 수개월에 걸쳐 그녀는 이 공간을 기록했으며, 서로 다른 초점 거리를 활용해 어떤 경우에는 가까운 잎사귀의 흐릿함 너머로 거리의 요소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다른 경우에는 잎사귀가 또렷하게 보이고 멀리 있는 거리는 흐릿하게 보이도록 했다. 물론 거의 모든 프레임에서 초점이 바뀌기 때문에, 그 결과로 형성되는 경험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망막적 콜라주를 만들어내며, 가장 작은 공간조차도 지각적으로 광대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 라우더의 영화적 설계, 아비뇽 거리의 활기, 그리고 발코니 정원에서 일어나는 빛과 바람, 색의 다양한 변화(일부는 예측 가능하고 일부는 라우더의 통제 밖에 있는) 사이의 수많은 교차를 드러낸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은 정원과 라우더의 카메라는 하나의 유비를 이룬다. 각각은 라우더의 내적 세계(그녀의 생활 공간과 영화를 위한 설계)와 바깥 세계의 공간 사이의 매개체가 된다. 라우더가 바쁜 거리와 자신의 사적인 공간 사이에 작지만 효과적인 '가림막screen'을 제공하기 위해 정원을 구성했듯이, 완성된 영화 또한(이 말장난을 용서해 준다면) 적어도 잠시 동안은 영화 내러티브의 통상적인 유통 방식과 공간의 관습적 이용을 차단해낸다screen out.

    거의 동일한 방식이 〈기준점으로의 회귀 Retour d’un repère〉(1979)에도 사용되었는데, 이 작품에서 라우더는 아비뇽의 어떤 공원의 한 구역을 탐구한다. 또한 〈프로방스의 밭 Champ provençal〉(1979)에서는 프로방스의 과수원에 있는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를 세 차례(4월 1일, 4월 16일, 6월 24일)에 걸쳐 촬영했다. 이 세 작품 모두에서 라우더는 공들인, 심지어 집요한 방식의 작업을 통해, 대부분의 필름메이커들, 특히 상업 영화 감독들이라면 단지 사소한 배경으로 여겼을 요소를 하나의 충실한 영화적 경험으로 확장한다. 그러나 〈해바라기 Les tournesols〉(1982)부터 라우더는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해바라기〉는 해바라기 들판을 카메라의 시각 영역 안에서 다양한 초점으로 촬영한 3분짜리 짧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분명 하나의 장면을 상업 영화보다 훨씬 오랫동안 응시하지만, 단일의 프레이밍으로 포착된 이 들판은 오히려 생기를 얻는 듯 보이며, 몇 시간에 걸쳐 일어난 해바라기의 미묘한 움직임을 비교적 짧은 영화적 순간으로 응축한다. 이처럼 들판이 생기를 띠는 효과가 인근 아를에서 그려진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특히 떠올리게 한다는 점은 라우더의 의도는 아니었다. "나는 반 고흐 영화를 만들려고 나간 것이 아니었고, 내가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반 고흐의 붓질은 내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해야 했던 작업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이후의 시기에서 라우더의 '미니멀리즘'은 점차, 작은 국지적 공간을 영화적으로 확장하여 그 복잡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하나의 제한된 영화적 지속으로 응축함으로써 무엇이 가능한지를 탐구하려는 시도로 이동한다. 초기 작품들이 하나의 구도 안에서 형성되는 공간의 깊이를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후의 작품들은 공간보다 시간을 더욱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즉흥곡 Impromptu〉(1989)에서 라우더는 세 그루의 나무와 하나의 양귀비 들판에 주목하는데, 각각의 장소는 서로 다른 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촬영된 뒤 이어 붙여져 하나의 영화로 구성된다.  "〈즉흥곡〉의 첫 번째 나무의 경우(아비뇽의 한 뜰에 있는 나무), 나는 홀수 프레임만 노광하고 짝수 프레임은 노광하지 않은 채로 촬영했다. 그런 다음 필름을 정확히 같은 위치로 되감고... 그러고 나서 짝수 프레임을 노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무의 이미지는 공간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시간이 재구성되어, 1초 동안 우리는 하루 중 한 시점에서 촬영된 12개의 프레임과, 같은 날의 더 늦은 시점에서 촬영된 12개의 프레임이 서로 교차된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빛, 바람, 그림자와 같은 자연적 요소들이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때로는 극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프레임 안에서 시간의 밀도가 높아지며 나무는 미묘하게 떨리고 진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마치 시간으로 응축된 나무의 이미지가,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광합성의 놀라운 에너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라우더가 이 첫 번째 롤을 몇 초간의 정상적인 움직임으로 마무리할 때, 그 정상적인 움직임은 그에 앞선 치밀하게 구성된 구간만큼이나 낯설고도 놀랍게 보인다. 〈즉흥곡〉의 이어지는 부분들에서는 아비뇽 근처 과수원의 복숭아나무, 붉은 양귀비 들판, 그리고 또 다른 복숭아 과수원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각각의 경우에서 라우더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소요된 시간들을 응축하고 재구성하여, 제한된 공간에 생기를 부여하고 그것을 짧지만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듯한 영화적 지속으로 만들어낸다.

    아비뇽과 그 주변에서의 삶의 공간과 시간을 탐구하려는 라우더의 경향, 그리고 특히 경험을 최소한의 영화적 지속으로 응축하려는 시도는 1994년과 1995년에 제작된 1분짜리 미니 필름 10편으로 이루어진 〈부케 1–10 Bouquets 1–10〉에서 하나의 정점에 이른다. 이 연작은 이전의 작품들보다 더욱 분명하게 생태적 인식을 위한 영화적 모델을 제시하려는 것으로, 라우더에게 있어 자신의 영화 작업과 상업 영화 제작 사이의 관계는 유기농 농업과 산업 농업 사이의 관계에 비유된다.


맥도날드
하지만 당신 영화에서의 그 작업의 집중성은 일종의 영화-정치학cine-politics으로 볼 수 있을까요? 당신은 유기농 식사를 하고, 냉장고도 갖고 있지 않죠. 프레임 단위로 작업하기로 한 당신의 선택은 일종의 환경적 입장 표명인가요?

라우더
대규모 예산의 TV나 영화 영상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전된 사회가 반드시 낭비적인 사회일 필요는 없습니다. 유기농 농업의 사례를 들어보죠. 오늘날 프랑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기농 농부가 산업 규모의 농부보다 훨씬 더 높은 기술적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농부는 전반적으로 비교적 교육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고, 기술 영업 담당자들이 찾아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를 줄이려면 막대한 양의 중장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농촌 인구는 줄어들고, 손으로 하는 노동은 거의 사라지며, 엄청난 양의 식량이 생산됩니다. 너무 많아서 일부는 버려야 할 정도로요(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그것을 버리도록 돈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반면 유기농 농부를 보면,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수작업도 해야 합니다. 밭은 손으로, 또는 더 부드러운 기계를 사용해 세네 차례 갈아엎어야 합니다. 유기농 시스템은 사람들이 다시 땅에서 일하도록 요구합니다. 실제로 유기농 농업에서는 기계의 종류가 더 많지만, 그것들은 더 작고, 더 정밀하며, 각각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당신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이것 역시 같은 선택입니다. 매우 정밀한 방식으로 작업할 수도 있고, 자신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산업 현장에서 일할 때는, 슈팅 레이쇼가 60대 1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 한 방송국에서 일했는데, 매일같이 자루째로, 자루째로 물건들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산업에서는 결국 판매되는 것만이 의미를 가집니다…

전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생태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모두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생태적인 방향으로 변화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으로 밭을 여러 차례 갈아엎는다는 발상은 라우더의 여러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업 방식을 잘 설명해 주는데, 특히 〈즉흥곡〉과 〈부케 1–10〉의 일부 구간에서 두드러진다. 이때 우리의 시야는, 라우더가 필름의 고랑을 따라 이동하며 개별 프레임을 여러 차례 빛에 노출시켜 만들어낸 이미지들을 우리의 망막 위에 심어 놓음으로써 형성된다. 〈즉흥곡〉의 풍경들이 지니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에너지는, 유기농 식단이 만들어내는 높은 에너지에 비유될 수 있다.

    라우더의 초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부케〉는 정형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의깊게 설계된 정원처럼 배열되어 있다. 각 〈부케〉는 정확히 1분 길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음 〈부케〉와는 6초의 암전 리더 필름으로 구분되고, 그 사이에는 하나의 꽃을 클로즈업한 싱글 프레임이 삽입된다. 각 〈부케〉는 제목이 한 글자씩 나타나며 시작되고, '로즈 라우더'라는 이름과 완성 연도가 역시 한 글자씩 제시되며 끝난다. 각각의 〈부케〉에서 라우더는 프레임 단위로 작업하는 다양한 시각적 가능성을 탐구하는데, 때로는 〈즉흥곡〉, 〈해바라기〉, 그리고 다른 초기 작품들에서 익숙한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강렬한 플리커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초기 라우더의 작품들이 서로 명확한 구성적 관계를 지닌 연속된 프레임들을 배열하는 경향이 있다면, 〈부케〉에서는 연속된 프레임들 사이의 간격이 매우 커서 관객은 동시에 여러 종류의 공간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부케 10〉(1995)의 한 연속된 세 프레임에서는 노란 락투카 페렌니스의 클로즈업이 먼저 나타나고, 이어서 뒤랑스 강 위에 세르퐁송 댐에 의해 형성된 프랑스 알프스 인근의 인공 호수를 담은 롱 쇼트가 나오며(1960년에 완공된 이 댐은 두 개의 마을을 수몰시켰고, 프레임 중앙에 위치한 언덕 위 교회만이 수면 위로 남아 있다), 다시 노란 히에라키움의 클로즈업이 이어진다. 또 다른 세 프레임(〈부케 7〉)에서는 프로방스의 하늘 풍경, 작은 폭포의 클로즈업, 그리고 안뜰의 나무가 나타난다. 여러 공간들 사이에서 라우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은 〈뤼 데 탱튀리에〉에서 다양한 초점을 배열하는 방식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초기 작품이 하나의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을 확장된 영화적 공간으로 펼쳐낸다면, 각각의 〈부케〉는 크고 작은 여러 공간들을 하나의 작고 다층적인 영화적 경험으로 응축한다.

    개별적인 〈부케〉의 특정 순간들은 때로 '망막적 부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는 보다 문자 그대로는, 연속된 프레임들이 서로 다른 꽃들을 잇달아 드러낼 때를 가리키며, 동시에 비유적으로는 라우더가 자신이 살아가는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지역의 '꽃들'을 거의 언제나 모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목이 암시하듯, 이 미니 필름들의 연작 자체가 하나의 부케로 구상되어 있다. 즉, 〈부케〉들의 부케이다. 일반적인 꽃다발과 마찬가지로, 이 부케 역시 단 한 번의 시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에 걸쳐 음미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각각의 〈부케〉가 지닌 시각적 밀도와 고유한 시각적 구성(〈부케 1–10〉은 무성이다)은 반복적인 관람을 요구하는데, 이는 하나의 꽃이 그 세부에 대해 지속적인 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이 연작은 수많은 서로 다른 장소의 이미지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은 단 한 번의 관람으로 라우더가 수행한 작업 전체를 온전히 따라갈 만큼의 에너지를 끌어내기 어렵다. 다행히도 이 영화적 부케는 실제 꽃다발보다 훨씬 더 긴 수명을 지닌다. 그러나 라우더의 제목이 암시하듯, 그녀가 우리에게 제시한 각각의 〈부케〉는 연약하다. 이는 우리의 눈과 기억이 그 복잡한 이미지를 오래 붙잡아둘 수 없다는 명백한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물질 세계의 모든 대상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필름(특히 컬러 필름)은 창작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서서히 소멸의 과정에 놓이기 때문이다. 〈부케 1–10〉은 우리가 가능한 한 이 (영화적) 장미의 꽃봉오리들을 지금 이 순간 거두어야 함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