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클로드 루소와 서울에서 나눈 대화
2026.07.27


인터뷰어: 박규재, 일환
인터뷰이: 장-클로드 루소
로트링겐의 박규재, 일환은 제 23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장-클로드 루소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 응하고 원고를 세심하게 검토해 주신 장-클로드 루소 감독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터뷰가 성사될 수 있게끔 도와주신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의 조인한 프로그래머, 인터뷰 영문을 검수해 준 제임스 피어슨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인터뷰어
우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기 직전 시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70년대에 뉴욕에서 얼마간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루소
맞습니다.

인터뷰어
그곳에서 아방가르드 영화를 접하셨고요. 대략 언제였는지 기억하십니까? 당시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나 영화감독이 있었나요?

루소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뉴욕에 간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으면서, 이른바 요나스 메카스 시네마테크에 갔습니다. 그 건물의 작은 서점에서 놀랐던 일이 있어요. 책이 몇 권 없었는데 그중 있던 하나가 로베르 브레송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그들이 출판한 책이었죠. 제게 큰 인상을 준 건, 언더그라운드 필름메이커들이 로베르 브레송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여러 차례 갔어요. 정확히 어느 해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뉴욕으로 이사한 뒤였다면 1976년이겠죠.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샹탈 아케르만의 〈잔느 딜망〉 개봉 행사였습니다. 그때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이미 본 적이 있던 사람도 다시 만났는데, 아마 도미니크 노게즈였을 겁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었어요. 당시 뉴욕에 관해 흔히 하던 말처럼, 몇 편의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발견했고 메카스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습니다. 제게 중요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메카스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마 그때 처음으로 봤을 겁니다. 그리고 그 무렵 마이클 스노우의 영화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다른 계열이지만 오즈 야스지로 영화도 처음 보았어요. 아마 일본문화원에서였을 겁니다. 어떤 작품을 상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1970년대였고, 오즈가 서구, 특히 유럽에서 아주 유명해지기 시작한 때였죠. 제가 뉴욕에서 돌아온 뒤였는데, 아마 1978년이나 1979년에 파리에서 오즈 회고전을 보았죠.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영화들을 보려고 극장 앞에 줄을 섰습니다. 알랭 레네도 줄에 서 있던 것이 기억나요. 극장이 이미 꽉 차서 그조차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죠. 프랑스인들의 관심이 그만큼 컸다는 뜻입니다. 독일도 비슷했을 겁니다.
뉴욕으로 갔을 때 저는 이미 써놓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한 제작자의 사무실에 찾아간 적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하는지 알려주었어요. 왼쪽에는 이미지에 대한 설명, 오른쪽에는 소리를 적는 형식이었습니다. 그 방식을 최대한 따르려고 했죠. 처음에는 그저 손으로 쓴 글에 불과했습니다. 이야기라고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머릿속에 있던 정신적 이미지들을 손으로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전원음악회〉가 시작됐습니다. 시나리오는 위원회 같은 곳에 제출하기 위한 정식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영화를 만들 돈을 주지 않았죠. 왜 “다행스럽게도”라고 하느냐고요? 시나리오 자체에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 시나리오를 읽을 수 없겠지만(올가을 뉴욕에서 영어판1)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이 시나리오에 주제가 있다면 바로 시나리오 자체의 역사입니다. 시나리오 자체가 그 주제예요. 사실 그 안의 허구적 내용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영화로 만들 수 없어요. 저는 형식에 맞춰 게임을 한 겁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위원회에 돈을 신청하는 영화감독들, 미래의 영화감독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왜 “다행스럽게도”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돈을 받았다면 이야기 자체가 깨졌을 테니까요. 
저는 위원회에 시나리오를 보내기 전에 먼저 도미니크 노게즈에게 보여주었고, 그다음 마르슬랭 플레네(Marcelin Pleynet)에게 보냈습니다. 그 당시 가장 흥미로운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Surfaces)라는 미술운동과 관련돼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작업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그들에게 보여준 겁니다. 그러면서 도미니크 노게즈를 제대로 알게 됐어요. 그가 이 글을 읽은 뒤 친구가 됐어요. 그는 이 시나리오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저는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에게도 보냈습니다. 처음에 장-마리는 “나는 시나리오를 읽지 않아”라고 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읽었고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것에 관해 글도 썼죠. 당시 프랑스 시네마테크에서 아방가르드·독립·실험영화를 아우르는 대규모 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Jeune, Dure et Pure》, ‘젊고 순수하고 강인한’이라는 뜻입니다. 그 프로그램의 기획자 가운데 한 명이 크리스티앙 르브라였어요. 저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고 그도 제 영화를 알고 있었습니다. 도록에 좋은 글을 써준 사람이기도 해요. 크리스티앙 르브라는 장-마리로부터 〈갇힌 골짜기〉에 관한 글이나 말을 원했습니다. 그는 다니엘 위예와 장-마리 덕분에 그 영화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두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면 16mm 블로업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잠깐 곁가지로 하는 말입니다만, 두 사람은 필요한 일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실무를 맡았던 다니엘이 자금 마련 등을 처리했죠. 덕분에 슈퍼 8에서 16mm로 블로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두 사람과 프랑스 시네마테크의 한 상영실에서 테스트 영상을 보았습니다. 제 눈에는 꽤 끔찍했어요. 하지만 장-마리는 “아니, 아니, 계속해야 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일을 알고 있었고 크리스티앙 르브라도 그중 하나였던 거죠. 그래서 그가 장-마리에게 〈갇힌 골짜기〉에 관해 무언가를 적어달라고 부탁하려 한 겁니다. 저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주었습니다. 당시 스트로브는 로마에 있었어요. 저는 몇 달 전 시나리오를 보내놓은 상태였습니다. 장-마리는 손으로 글을 써서 크리스티앙 르브라에게 팩시밀리로 실어달라고 했습니다. 
장-마리가 〈갇힌 골짜기〉에 관해 쓴 글을 아시겠지만, 거기에 이 시나리오에 관한 말도 덧붙였습니다. 프랑스어로 “그리고 장-클로드 루소는 실험영화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장엄한 글을 썼다”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언급했죠. 크리스티앙 르브라는 장-마리에게서 그 답장을 받은 뒤 제게 전화했습니다. “도대체 이 시나리오가 뭐죠? 한번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묻기에 물론이라고 했어요. 그는 읽어보고 출판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됐고, 이 책, 『전원음악회』는 그렇게 나온 겁니다.

인터뷰어
〈갇힌 골짜기〉에 관해 장-마리는 이렇게 썼습니다. “〈갇힌 골짜기〉의 모든 숏 (프레임, 이미지, 빛)은 주사위를 던지고, 현대영화의 4분의 3과 그 촬영감독들을 망각 속으로 보내버린다.”

루소
그것이 장-마리가 크리스티앙 르브라에게 보낸 자필 답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첫 문단이고, 그다음 이 시나리오에 관해 말하죠. 

인터뷰어 
장-마리가 〈갇힌 골짜기〉에 관해 한 말에서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영화는 규모의 경제와 상업적 신화에 귀속됩니다. 작가님의 작업은 자본주의라는 큰 동향에 맞서는 개인의 힘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작가님 영화의 정치적 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루소
아주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제게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흥미로운가 하면, 몇 주 전 마르세유에서 상영된 제 최신작(〈순환 승차권의 마지막 정거장〉)에 관해 『르 몽드』에 아주 좋은 평론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그 기사가 어떻게 끝나는지 읽어보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영화가 영화제 전체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급진적인 영화였다고 합니다. 그 영화제는 보통 다큐멘터리영화제로, 대개 정치적 사유와 연결돼 있습니다. 저는 정치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어떤 사실을 내세워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존재하는 방식, 제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상업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맞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영화들 자체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저는 투사가 아닙니다. 누구와 싸우려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제 영화를 견디지 못하는 건, 제 영화가 그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비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작업은 예술과 아무 관계가 없고, 이미지가 어떠해야 하는지와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특히 『르 몽드』의 그 기사에 사람들이 반응했기 때문이에요. 마르세유에 사는 여성 시인 친구는 기자의 말이 아주 옳다고 했습니다. 영화의 급진성 때문에요. 저는 투사가 아닙니다. 약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 영화가 얼마나 강한지는 압니다. 저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인터뷰어
시나리오 이야기로 돌아가도 될까요? 『전원음악회』요. 해당 시나리오가 작가님의 영화 세계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했나요?

루소
‘뿌리’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모든 영화의 뿌리가 〈전원음악회〉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겁니다. 〈전원음악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조르조네의 그림 속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림의 한 인물이 되는 것. 제 영화에서 제가 이미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을 보여주려는 일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점이에요. 오히려 프레임 속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한 가지 방식이죠. 제 첫 영화 〈창가에서 편지 읽는 소녀〉부터 그렇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픽션으로 볼 수 있어요. 그 픽션은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것, ‘데페네스트라시옹(défenestration)’입니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일은 한 번만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은 할 수 없죠. 하지만 이미지 안으로 들어가 그 일부가 되는 일은 여러 번 할 수 있습니다. 제 영화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매번 일종의 데페네스트라시옹인 셈이죠. 다시 말하면, 창문을 뛰어넘는 일은 가능하지만 단 한 번만 가능할 것입니다. 반면 이미지 안으로 들어가 이미지의 일부가 되는 것—제게는 같은 일이지만—은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종의 데페네스트라시옹이라는 말을 이제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말 이미지의 일부가 된다면 언제나 하나의 사라짐이 일어납니다. 이미지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선들의 관계, 올바른 프레임을 이루던 선을 파괴한다면 이미지가 사라질 겁니다. 반대로 이미지가 존속한다면, 그 사람이 이미지와 선들에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제가 디지털 영화 카메라로 처음 촬영한 작품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만든 〈그의 아파트에서〉이었습니다. 촬영하자마자 작은 화면으로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올바른 프레임을 보았고 그 이미지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촬영하자마자 이미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두 번째 숏을 찍었고, 이번에는 작동했습니다. 그것이 〈로베트로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단편이 되었고, 지금은 〈페스티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슈퍼 8은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도 슈퍼 8로 찍는 사람이 있겠지만, 필름을 현상소에 보내고 일주일쯤 기다렸다가 받아봐야 결과를 알 수 있어요. 돌아온 것을 보면 제가 원했던 것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기엔 이른지도 모르지만, 저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테스트 숏을 버리지 않았어요. 두 번째로 만든 영화 〈베니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생각납니다. 새 슈퍼 8 카메라를 시험하려고 찍은 숏이 하나 있었어요. 벽에 베네치아 엽서를 붙이고 초점 등을 시험했습니다. 정말 테스트일 뿐인 2분 30초짜리 릴이었죠. 테스트였으니 실망할 이유도 없었고, 당연히 사용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베니스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부분이 됐습니다. 통상적인 관점에서라면 버렸어야 할 릴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영화를 기억하신다면, 마지막 부분은 약 1분 30초 동안 초점이 맞지 않다가 창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초점이 맞습니다. 꽤 잘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최악의 슈퍼 8 릴이었지만, 바로 그것이 영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인터뷰어
그 말씀과 관련해서, 작가님은 주로 혼자 촬영하시는 것 같습니다.

루소 
항상입니다. ‘주로’가 아니라 항상 혼자 찍습니다. 카메라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터뷰어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작가님이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놀라울 만큼 정확하고, 꼭 있어야 할 곳에서 움직이는 듯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요?

루소
프레임이 어떻게 ‘올바르게’ 되는가, 그 올바름에 관한 다른 질문과 같은 답을 해야 할 겁니다. 즉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언제나 우연입니다. 하지만 프레임의 올바름을 설명하기에 ‘우연’은 꼭 맞는 단어가 아닙니다. 사람이 카메라 앞에 있으면 뒤에는 있을 수 없고, 자기 움직임이 화면에서 어떻게 보일지도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처음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을 때, 호텔에서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촬영했습니다. 저는 프레임 하나를 보고 숏을 찍었습니다. 지금 〈페스티벌〉의 마지막 부분이고 처음에는 〈로베르토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불렸던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제가 쇼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움직임을 찍고 1분 뒤 결과를 보니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같은 움직임을 다시 했습니다. 아마 창가로 가서 커튼을 여는 동작이었을 겁니다. 대개 그런 움직임이죠.

인터뷰어
작가님이 ‘라코르(raccord)’와 ‘아코르(accord)’라는 개념에 관해 하신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루소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아코르는 편집에서 한 숏을 앞뒤의 다른 숏에 이어 붙이는 일을 뜻하죠. 이미지를 글쓰기의 기호처럼 사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그런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보는 것은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미지는 글쓰기의 기호가 될 수 없어요. 이미지가 묶이는 순간 존재하지 않게 되고 사라집니다. 이미지는 자유로울 때에만 이미지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가 모든 방향으로 관계를 맺으려면 궤도 전체에 걸쳐야합니다. 다른 것에 묶여 있지 않다면 이미지가 어떻게 홀로 설 수 있을까요?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중심점에서 작용하는 일종의 중력에 의해 홀로 설 수 있습니다. 그 중심점을 볼 수는 없지만, 요소들이 그 주위를 궤도를 따라 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무언가에 묶인다는 것은 우리가 글을 쓰듯, 문학에서처럼 선형적인 서술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시는 다릅니다. 시는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free’는 무언가를 해방한다는 동사이기도 하죠. 시는 단어를 자유롭게 합니다. 일반적인 문학은 그렇지 않아요. 그러므로 시는 제가 아코르와 라코르의 차이를 말하며 생각하는 것에 아주 가깝습니다. 시에서 단어는 자유롭습니다. 이미지도 자유롭지 않다면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닙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이해하기만 기다리는 사람, 마치 이야기를 읽는 듯 영화를 보는 사람은 고다르의 영화를 견디지 못합니다. 극장을 나가며 “도대체 무슨 뜻이야? 무슨 말을 하려던 거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죠.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극장에 머물렀고 나가지 않았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지에 붙잡혔던 겁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미지 자체에는 하고자 하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지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재현이 될 겁니다. 하지만 진정한 이미지는 재현이 아니라 현존입니다. 예술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브레송의 단어를 빌려 ‘시네마’와 ‘시네마토그래프’를 구별한다면 말이죠.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노트』. 브레송은 이 책에서 시네마와 시네마토그래프를 구별합니다. 시네마토그래프가 예술이라면 오직 예술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이 점은 방금 말한 이미지의 자유와 연결됩니다. 우리는 이미지 앞에서 약합니다. 아주 약해요. 세잔의 말이 있고, 브레송이 이 책에서 그 말을 반복합니다. “한 번의 붓질에 나는 목숨을 건다 À chaque touche, je risque ma vie.” 전혀 편안한 일이 아니죠. 사람들이 이미지를 글쓰기의 기호처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고다르의 영화에서 언제나 그렇듯 진정한 이미지를 유지한다면, 그리고 물론 스트로브나 브레송에게서처럼 이미지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재현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미지는 언제나 모티프를 관통합니다.


인터뷰어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영화 제작과 예술 일반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루소
그런데 방금 관점(perspective)이라는 단어를 쓰셨죠. 그 말은 제가 모티프에 관해 하던 말과 아주 밀접합니다. 모티프는 재현이며 원근법입니다. 하지만 깊이는 아니죠. 깊이를 얻으려면 원근법을 잊어야 합니다. 그때 모티프를 관통하게 되고, 그 깊이는 정말로 깊어집니다. 눈이 거기에 붙들려 자신이 사라지는 것, 모티프를 가로지르는 것 같죠. 베르메르의 그림을 진정으로 보게 되어 비전을 얻는 순간에 모티프를 잊게 됩니다. 관점이라는 말을 듣고 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원근법을 잊지 않는다면 깊이는 없습니다. 원근법은 재현이고, 깊이는 현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기 자신을 잃게 됩니다. 제게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이것입니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요.

인터뷰어
2003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하셨을 때 만든 〈소나기가 오기 직전〉, 야외 식당을 촬영한 영화죠. 무엇이 그 장소에 끌리게 했고, 영화에 영감을 주었나요?

루소
그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부 해드리죠. 2003년 전주에서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지금만큼 작품이 많지는 않았죠. 저는 영화 카메라도, 당연히 삼각대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촬영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어요. 카메라를 빌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장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받았어요. 제 영화 프로그램을 기획한 프로그래머와 함께 택시를 탔습니다. 그녀는 제 왼쪽에 앉아 있었고 저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받자마자 그것을 든 채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되었지만, 제가 찍은 첫 번째 숏이었어요. 그리고 저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을 ‘엔젤’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게 늘 곁에 있는 엔젤이 있었죠. 우리는 구시가지의 한 식당에 갔습니다. 테라스가 강변에 있어 좋았어요. 세 존재가 그곳에 앉았습니다. 저, 엔젤, 그리고 삼각대 위의 영화 카메라. 올바른 프레임, 완벽한 프레임을 발견했기 때문에 카메라를 켰습니다. 우리 앞에는 점심 식사를 거의 마친 남자 세 명이 있었어요. 한 사람은 술을 조금 지나치게 마셨습니다. 그들은 택시를 부르고 계산한 뒤 타러 갔습니다. 한 사람은 너무 마셔서 일어서기도 힘들어했어요. 어쨌든 그들은 떠났습니다. 무엇이 남았을까요? 접시와 모든 물건이 남았죠. 식당 주인과, 아마 그의 어머니였을 여성이 오른쪽에서 옵니다. 그런데 접시를 하나씩 치우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자체를 들어 옮겨버립니다. 물론 그곳의 관습이겠죠. 이것이 영화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숏은 약 15분간 지속됩니다. 처음 5분은 남자 세 명, 다음 5분은 여성이 오가며 치우고 청소하는 모습입니다. 그녀가 청소하는 장면은 놀랍습니다. 다행히도 그녀는 영화 카메라를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 앞서 말했듯 카메라가 세 번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 엔젤, 그리고 영화 카메라. 그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천장을 청소하려고 빗자루를 썼어요. 그리고 붉은 방석 더미가 있었습니다. 제게는 영화에서 대단한 순간입니다. 프레임은 완벽했지만 일어난 일은 매우 위험했어요. 그녀가 방석 서너 개를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도 프레임은 이전과 똑같이 완벽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5분 동안 텅 빈 테라스가 이어집니다. 영화의 코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은 빗속의 택시 안이고,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죠. 장-마리 스트로브는 이 영화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인터뷰어
장-마리가 〈유로파〉를 촬영하려 하기 직전이었죠?

루소
네, 〈Europa 2005 – 27 octobre〉.

인터뷰어
어떻게 장-마리와 함께 영화를 만들게 됐나요?

루소
이 작품은 파리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결돼 있습니다. 경찰의 추격을 받던 두 젊은이가 전기 변전소에 들어갔다가 죽은 사건입니다.
엔리코 게치, 아십니까? Fuori Orario라는 프로그램을 아세요? 이탈리아 방송 RAI 3의 프로그램입니다. 제 회고전을 방송했고 제 영화 여러 편의 방영권도 샀습니다. 엔리코 게치는 여러 영화감독에게 로셀리니의 〈유로파 51〉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장-마리의 응답은 일종의 시네트락트(Cinétract)였습니다. 그는 두 젊은이가 죽은 장소에 가고 싶어 했고, 제게 자신의 의도를 말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영화처럼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디지털 카메라를 쓸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그와 함께 현장에 가 촬영한 이유입니다. 다섯 테이크를 찍었습니다. 다니엘과 장-마리는 로마에 있었고, 어느 테이크를 선호하는지 물으려고 영상을 보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다섯 테이크가 모두 좋고, 다섯 개 전부가 영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터뷰어
이번 회고전 기간에 영화로 만들고 싶게 한 무언가를 발견하셨나요?

루소
지금까지,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는 간단히 ‘아니요’라고 답해야 합니다.2) 왜냐하면 비전을 얻으려면 마음이 정말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전에 사로잡혀야 해요. 비전을 얻는다는 것은 조금 전 말했듯 사물들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물들이 사라질 수 있는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일어난 일들이 무척 기쁘기는 했지만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으니까요. 그런 상태에서는 이미지를 보고 느끼며 비전을 얻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어에서 ‘vision’은 두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언가를 보는 것도 ‘vision’이지만, 누군가가 올바른 시각을 잃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다면 “Il a des visions.”(그는 환영을 본다.)라고도 말합니다. 강한 의미에서 이미지는 사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인터뷰어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만들고 싶거나 작업 중인 것, 또는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관해 조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루소
마지막에 쓰신 단어는 끔찍한 단어라고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제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저는 어떤 프로젝트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인터뷰어
아, 그저 관습적인 표현으로…

루소
관습이라고요?,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있습니까?

인터뷰어
무언가를 미리… 사전에 준비한다는 뜻이죠…

루소
네. 그러니 ‘프로젝트’가 끔찍한 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네요. 무언가를 미리 준비한 것이 프로젝트니까요. 시나리오도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제가 답할 수 있게 조금 도와드리죠.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사실 어디에서든—정확히 어디에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볼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번 갔던 이탈리아에서는 이유를 찾지 않는데도 촬영하고 싶은 느낌이 듭니다. 아마 빛 때문일 겁니다. 이탈리아 벽의 빛은, 이를테면 그리스 벽의 빛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스의 빛은 너무 강해요. 저는 그리스에 정말 여러 번 갔습니다. 8월 말에도 갈 예정이지만 촬영하지는 않을 겁니다. 빛이 너무 강합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햇볕 화상을 남기는 듯해요. 그리스에 처음 갔을 때 저는 열아홉 살이었고, 아테네와 미코노스 사이를 가는 배 위에서 스무 살이 됐습니다. 몸에도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마음에도 화상 같은 흔적이 남았습니다. 이탈리아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답이 되겠군요. 프로젝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있는 곳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비전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트로브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한 장소를 진정으로 느끼려면 거듭해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촬영을 요청 받아 잠시 방문한 장소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곧바로 무언가를 찍을 수 없습니다. 같은 곳에 오래 머물거나 되돌아오다 보면 강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비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프로젝트가 아니라 머물 장소가 먼저입니다. 그전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장소 자체가 첫 번째입니다. 계속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처음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통해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 〈갇힌 골짜기〉가 좋은 예입니다. 저는 ‘갇힌 골짜기’로 계속 돌아갔고, 영화를 만드는 데 약 10년이 걸렸습니다.



1)  인터뷰에서 언급된 장클로드 루소의 『전원 음악회』(Le Concert champêtre)는 케빈 웨일(Kevin Weil)의 번역으로 2026년 10월 Taufic에서 영어판 『The Pastoral Concert』로 출간되었다. 이 판본에는 루소가 작성한 관련 자료와 도미니크 노게즈, 마르셀 아눈, 장-마리 스트로브 등과 주고받은 서신도 수록되어 있다. 
2)  결국 장-클로드 루소는 서울에서 영화를 만들었으며, 제목은 “유령들 Ghosts”이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