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일환 옮김
프로그램 1.
*<집에서 보이는 풍경>을 제외한 모든 작품은 16mm로 제작되었으며, <집에서 보이는 풍경>은 슈퍼 8을 DV로 옮긴 작품이다.
(LUX에서 2010년에 출판된) 《메세지》 DVD에 포함된 작은 책자는 수록된 영화들에 대한 좋은 설명서이다. 이번 16mm 영화 프로그램은 DVD의 것과 동일하지만, 상영 순서에 있어 한 가지 작은 변화가 있다. 이 변화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다. 영화는 (완성된 순서대로가 아니라) 내가 촬영한 순서대로 상영된다. 해당 시기는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있던 때이기도 하다. 새삼 깨닫게 된 것은, 프로그램이 그 시기를 지나온 내 감정의 여정을 꽤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 작업의 특정 측면들을 더욱 일기적으로 독해하도록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긴 무성영화인 <메세지>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내 딸 마야가 아직 어리고 그녀가 새롭게 발견한 세계에 대해 호기심이 많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훗날 <전주곡>에서 사용될 자료를 촬영했다. <전주곡>은 우리집 뒷마당의 고정된 한 지점에서 펼쳐진다. 하루 동안 햇빛과 그림자가 그곳을 쓸고 지나간다. 우리는 (몇 년이 지난 후의) 마야를 다시 볼 수 있는데, 마당에 설치된 그네를 타고 노는 모습이다. 그 무렵 나는 마야의 친모와 관계를 정리하고 있었기에, 영화를 마무리할 시간이 없었다. 이후 한 학기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의를 한 뒤 런던 동부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왔고, 마야는 주말마다 나를 찾아왔다. 바로 이 아파트가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집에서 보이는 풍경>을 촬영한 곳이다. 이 작품 역시 햇빛, 빛이 방 안을 지나가고 창밖 아파트 블록들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모습을 조명한다. 앞선 두 편의 영화, <필터 베드>와 <비행>은, 그 아파트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옛 정수시설에서 촬영되었다.
물론 작가의 작업을 지나치게 전기적으로 독해하는 일에는 위험에 따른다. 다만 가능한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특정한 이미지나 주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왜 특정한 이미지들에 끌리게 되는 것인가?
예술가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도 훨씬 나중에서야 그것이 지닌 중요성을 깨닫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직관과 제작 과정이 이론이나 분석보다 필히 선행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이 작품들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상단 설명에 암시되어 있는데, (《메세지》 DVD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본질적으로 당시의 나는 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도, 돈도, 장비도, 그 무엇 하나 갖고 있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하나의 기술적 지점. <비행>은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이 작품은 <필터 베드>에서 사용되지 않은 하나의 아웃-테이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자체 제작한 일종의 옵티컬 프린터를 활용했는데, 아이키 영사기로 한 프레임씩 멈추고 넘기면서, 흰 벽에 영사된 영화를 재촬영하는 방식이었다.
그 외의 작품들은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예를 들어 <필터 베드>는 A/B 네거티브 컷편집, 전문적인 사운드 믹싱을 거쳐 랩에서 프린트를 만들었다. 반면 <메세지>는 내가 손수 프린트를 만들었다. 런던 필름메이커스 코옵의 산업용 16mm 콘택트 프린터를 이용해 쇼트를 하나씩 천천히 쌓아 올리며 작품을 완성했다.
프로그램 2.
90년대부터 00년대 초반은 16mm 필름의 존속이 어려워 보이던 시기였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디지털 영화가 장악하여 아날로그 형식을 완전히 대체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심 밖에서 작업하던 필름메이커들에게 이 시기는 황금기였다. 제작사들은 편집 테이블, 영사기, 각종 스튜디오 장비를 헐값에 팔아버리거나 말 그대로 내다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새롭게 구한 16mm 스틴벡 플랫베드를 통해, 장비 부족으로 오랜 기간 중단되어 있던 여러 영화들을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70년대에 만들어 두었던 보다 실험적이고 과정-중심적인 영화들을, 두 대의 영사기로 다시 실험하기 시작했다. 2004년 린을 만난 이후에는 더욱 더 많은 영사기를 모으게 되었고, 함께 작업하면서 최대 6대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다가올 EXiS 프로그램의 <모음 & 자음>이 그렇다.) 두 사람의 손과 눈이 더해지면 (그리고 영사기도 더해지면) 선택지가 많아진다.
린과의 작업은 멀티 스크린 퍼포먼스에 대한 내 접근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전까지는 런던 필름메이커스 코옵의 전통에 따라, 작품은 퍼포먼스된다기보다 설치되어 정해진 방식대로 상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퍼포먼스 그룹인 루프홀 시네마는 예외였지만) 영사기는 고정된 위치에 놓였다. 린은 영사기를 유연하게 다루는 방식을 알려주었고, 이는 영화를 퍼포먼스 예술로 변화시켰다. 더 이상 베뉴 쪽에 설치 지침을 우편으로 보내는 것만으로는 가능할 수 없게 되었다. 린은 초기 퍼포먼스 작업인 <모음>(2005)에서 영사기를 움직이고, 초점을 바꾸고, 이미지 크기를 조절하며, 컬러 필터를 더하는 일을 모두 퍼포먼스 중에 행했다. 이러한 작업은 예술가 본인이 현장에서 수행해야만 가능했다. (세 번째 프로그램의 <가을 안개> 참조.) 한동안 우리는 이러한 실천을 ‘라이브 시네마’라고 불렀다. 나는 이러한 퍼포먼스를 과거처럼 분석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우선적으로 체험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16mm 영사기를 직접 조작하며, 깊이와 공간에 대한 환영을 다루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존재감. 일련의 것들은 영화의 감각을 살아있는, 현재의, 물질적 예술 형식의 것으로 견고히 만든다.
주의 - 지금부터는 기술적인 이야기!
<렘젯> 16mm 영사기 세 대, 옵티컬 사운드, FM 라디오, 약 9분.
핸드메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수업에서 사용할 오래된 필름 스톡을 살펴보다가, 생 컬러 필름(raw colour film)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컬러 필름에는 노광 과정에서 빛의 반사를 막아주는 렘젯(Remjet) 층이 뒷면에 코팅되어 있다. (이는 후처리 과정에서 제거된다.) 하지만 필름 양면에 선을 긁으면, 교차되는 지점에서 빛이 발생하고, 그것이 옵티컬 사운드 트랙 영역에 위치할 경우 소리로 변환된다. 이것이 <렘젯>의 기본을 구성하는 간단한 기술이다. 이후에는 라인과 멜로디의 패턴을 구축하고, 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조직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 결과인 간섭 패턴은 FM 라디오의 가변 주파수를 떠올리게 했고, 나는 이를 퍼포먼스에 우연적 요소로 도입했다.
<스플릿 와이어> 16mm 영사기 세 대 (중첩 이미지), 무성, 6분.
하나의 필름에 가하는 최소한의 개입만으로도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전신주 전선들을 3분짜리 카메라 롤에 촬영했다. 이 영화는 여러 차례 프린트되어 세 대의 영사기를 통해 중첩된 이미지로 영사되는데, 그 중 한 대는 이미지를 옆으로 뒤집어 상영한다. 후반부는 여분의 프린트로 만들어졌는데, 중앙을 따라 자르고는 약간 어긋나게 다시 붙여, 필름을 따라 수직의 균열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이것 역시 세 번 프린트되어 상영되며, 한 프린트는 뒤집혀서 상영된다.
세 영사기 사이의 미묘하게 다른 상영 속도는 세 이미지 사이에 자연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위상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애프터 더 프리웨이> 16mm 영사기 두 대, 별도의 카세트 테이프, 약 14분.
이 작품은 멀티-프로젝션에 대한 매우 다른 접근이다. 1995년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의하며, 도시로 진입하는 101번 고속도로(freeway)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거대한 구조물 아래에서도 계속되는 다양한 삶의 풍경에 매료되어, 고속도로가 쇼트에 항상 들어오게끔 카메라를 고정하고 네 개의 인접한 거리를 촬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싱글 스크린 영화인 <언더 더 프리웨이>이며, 이는 곧 EXiS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3년 뒤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찾았을 때, 고속도로의 상층부가 이미 철거되어 있었다. (지진에 취약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장소를 다시 촬영했고, 그렇게 완성된 투 스크린 영화 <애프터 더 프리웨이>는 1995년과 1998년이라는 두 개의 연속적인 시간대로서 상영된다.
<뉴스프린트 #2> 16mm 영사기 두 대, 퍼포머 두 명, 옵티컬 사운드, 약 10분.
원작 <뉴스프린트>(1972)는 신문 조각을 투명한 16mm 필름에 붙인 후, 강한 빛으로 프린트하여 신문의 앞뒷면이 중첩되어 드러나도록 만든 작품이다. 신문이 옵티컬 사운드 트랙을 덮는 부분에서 소리가 발생한다. 영사기 두 대로 진행되는 퍼포먼스인 <뉴스프린트 #2>에서는 두 벌의 동일한 프린트가 두 명의 퍼포머 각각에 의해 영사되고, 서로 교대로 필름을 진행시키거나 정지시키는 동작을 맞춘다.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 안쪽에 조금 더 작게 영사되고, 두 필름이 거의 같은 속도로 동기화될 때 놀라운 현상이 발생한다. 링 모듈레이션(ring modulation)의 시각적 등가물이라 할 수 있는, 질주하는 듯한 움직임(rushing motion)이 나타난다. 신문 컬러 부록으로 만든, 디지털 사운드 버전의 <뉴스프린트 엑스트라>는 2026년 EXiS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사이클스 #3> 16mm 영사기 두 대, 옵티컬 사운드, 8분.
<사이클스 #3>는 영사기 두 대로 초기작 <사이클스>(1972/77)를 겹쳐 상영하는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원작은 생필름에 구멍을 뚫고, 옵티컬 사운드 영역을 포함한 필름에 종이 점들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사이클스 #3>에서 퍼포먼스로 새 생명을 얻는다. 상영 중에는 두 프린트의 위상이 중요하다. 하나의 프린트는 점차 빨라지고 다른 하나는 느려지며, 한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보다 약간 작게 그 내부에 영사된다. 이러한 구성에서는, 아주 작은 조정만으로도 이미지와 사운드에서 모두 풍부한 리듬이 생성되며, 잔상과 같은 착시 현상도 나타난다.
<거울을 든 사람> 16mm 영사기 퍼포먼스, 거울, 무성, 9분.
이 퍼포먼스는 당시 런던 필름메이커스 코옵에서 자기-참조적인 요소를 가진 영화를 만들려는 경향 속에서 탄생했다. 아나벨 니콜슨의 <릴 타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의 초기작 <자화상> 또한 실물 크기의 이미지 속 나를 실제의 나와 함께 등장시켰다. 이러한 퍼포먼스들은 처음에는 영화가 특히 잘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의 환영을 탐구하고 드러내기 위함이었는데, 이를 통해 환영만큼이나 인공성 또한 의식하게 된다. 더 최근에는 내가 나이가 듦에 따라 퍼포먼스는 또 다른 맥락을 얻게 되었다. <거울을 든 사람>은 50년 전에 처음으로 상연되었다. 호주의 단체인 ‘티칭 앤 러닝 시네마’는 이 작품의 안무를 설명하는 워크숍 메뉴얼을 제작하여, 다른 사람들도 이 퍼포먼스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그램 3.
<하프 라이트> 16mm 영사기 두 대, 무성, 14분.
<하프 라이트>는 빛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일 년 중 특정한 시기와 하루 중 특정한 시간에만, 한 줄기의 빛이 집 안을 거의 관통하여 복도 끝의 곡면 벽 위에 가느다란 초승달 모양으로 맺히곤 했다. 다소 놀라운 이 형태들은 촬영 과정에서의 비스듬한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더욱 방향 감각을 잃은 듯한 이미지로 변형되었다. 이 네거티브 필름을 여러 차례, 서로 다른 노광 조건으로 프린트한 뒤, 처음에는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들과 빛만 있는 구간(화이트 리더)을 교차시키는 단순한 투 스크린 스크린 작품으로 상영했다. 이후 이를 라이브 퍼포먼스로 발전시켜, 중첩된 두 개의 영사 이미지 사이에 빛의 경로를 직접 개입시키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 결과 빛이 투사된 프레임의 가장자리 밖으로 흘러넘치는 듯한 효과가 만들어진다. (GS)
<가을 안개> 16mm 영사기 두 대, 무성, 12-15분.
처음 영국에 왔을 때 나는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 특히 정원의 포도나무 잎이 짙은 붉은색과 주황색, 노란색으로 물드는 가을에 깊이 매료되었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촬영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잎사귀 위를 스쳐 지나가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에도 강하게 끌렸다. 그 움직임은 작업은 주제가 되었다. 촬영하던 날에는 아주 약한 바람만 불었고, 그 미묘한 흔들림은 마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그림자극처럼 고요하고도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촬영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작업이 어떤 형태의 완성작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무엇보다 푸티지를 촬영하고 싶었다. 여러 롤의 필름으로 촬영했지만 편집은 전혀 하지 않았고, <가을 안개>는 후반 작업이 아니라 영사의 성능을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되었다. 원본 카메라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프린트만을 가지고 두 필름을 함께 영사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나란히 영사했을 때 정적이라고 느꼈으나, 한 이미지를 다른 하나보다 약간 크게하여 중첩했을 때는 예상치 못한 삼차원 효과가 발생했다. 지금도 나는 원본 카메라 네거티브를 그대로 영사한다. 흠집 하나 없이 지금까지 보존된 덕분에 이 작품은 반복되는 퍼포먼스를 통해 살아있을 수 있다. 가을 잎사귀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겹쳐지는 두 개의 이미지는, 빛과 그림자 그리고 색체가 함께하는, 하나의 연극과도 같은 몰입감 있는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LL)
<페이퍼 랜드스케이프> 투명 스크린과 페인트, 16mm 영사기, 무성, 9분.
<페이어 랜드스케이프>는 짝을 이루는 <거울을 든 사람>과 함께, 영화와 공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작업으로, 영사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상상 속의 깊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교란하고, 혹은 파괴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아이디어는 스크린 자체를 창작 과정의 능동적인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직접 퍼포머가 되었는데, 언제나 참여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이 영화를 처음 만들 당시에는 내가 퍼포퍼라는 사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 역시 작품의 또 다른 흥미 요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실내 공간과 실외 공간의 대비를 염두에 두고 실내에서 상연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가능한 한 야외에서 상연하는 편을 선호한다. 각각의 장소가 영화와 매번 다르게 공명하기 때문이다. (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