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까지
1970


장-뤽 고다르 작성
일환 옮김
원래 1970년 7월 『엘 파타』에 제목 없이 발표되었다. 다른 번역본은 1971년 1월 『프리 팔레스타인』에 실렸다. 이 글은 고다르와 장-피에르 고랭이 지가 베르토프 집단으로서 팔레스타인 투쟁을 기록하는 영화를 작업하던 시기에 쓰였다. 푸티지는 6년 뒤 공개된 〈여기 그리고 다른 곳〉의 바탕이 되었으며, 이 영화는 이 글에서 제기한 몇몇 아이디어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삽화는 마이클 굿윈과 그레일 마커스의 『더블 피처』(아우터브리지 앤드 라자드, 1972)에 수록된 고다르의 촬영 노트에서 가져왔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오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모잠비크나 콜롬비아, 벵골 같은 다른 곳보다 말이다. 중동은 프랑스와 영국 제국주의에 의해 직접 식민화되었다. (사이크스–피코 협정.) 우리는 프랑스의 무장세력이다. 이곳의 상황이 복잡하고 특수하기에 팔레스타인에 오는 것이 더 적절해 보였다. 이곳에는 수많은 모순이 있으며, 동남아시아보다 상황이 덜 명확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우리의 과업, 오늘날 영화를 통해 투쟁하는 예술가로서 우리는 여전히 이론의 단계에 있다. 혁명을 창조하기 위해 다르게 생각하는 것…… 우리는 아직도 그 단계에 있다. 알 아시파가 쏜 첫 총탄보다 수십 년 뒤처져 있다.

    마오쩌둥은 훌륭한 동지라면 어려움이 있는 곳, 모순이 극에 달한 곳으로 간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위한 프로파간다를 만드는 일, 그렇다. 이미지와 사운드로.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프로파간다를 만드는 일이란 문제들을 양탄자 위에 펼쳐 놓는 것이다. 영화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날아다니는 양탄자와 같다. 거기에 마법은 없다. 이것은 정치적인 작업이다. 연구하고 조사해야 하며, 그 조사와 연구를 기록한 다음, 그 결과물(몽타주)을 다른 투쟁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프랑스 공장에서 고용주에게 착취당하는 아랍 형제들에게 페다인의 투쟁을 보여주어야 한다. FBI에 쫓기는 블랙팬서의 자매들에게 파타의 여성 민병대원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배급해야 한다. 이것은 길고 험난한 일이다. 매일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페다이 한 명, 장교 한 명, 민병대원 한 명을 찾아 그들의 투쟁을 어떤 이미지와 사운드로 만들어낼지 함께 생각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일이다. “알 아시파의 첫 총탄을 쏘는 당신의 모습을 이미지로 촬영하겠습니다.” 전체가 의미를 갖도록 어떤 이미지가 먼저 와야 하고 그다음에는 어떤 이미지가 와야 하는지 아는 일이다.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의미, 곧 팔레스타인 혁명에 도움이 되고 세계 혁명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길고 험난하다. 영화가 무엇인지…… 파타에게 정보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른 조직들과의 모순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파타를 예를 들자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다. 그런데 미국 제국주의에는 뉴욕 타임스와 CBS도 포함된다. 우리는 CBS에 맞서 싸우고 있다. 자신을 진심으로 좌파라고 생각하면서도 CBS나 뉴욕 타임스에 맞서 싸우지 않는 기자들이 많다. 그들은 부르주아 언론에 기사를 실음으로써 파타를 돕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싸우고 있지 않다. 싸우며 활동하고 있는 것은 파타다. 죽어가는 것은 파타의 투사들이다. 이 점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문학과 예술은 두 전선에서 싸운다. 정치적 전선과 예술적 전선이다. 이것이 현재의 단계이며, 우리는 두 전선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파타가 발행하는 신문에는 여전히 지도자의 사진이 너무 많고 투사들의 사진은 너무 적다. 이 모순이 어디에 자리하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것은 레이아웃에 관한 예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데올로기 영역, 곧 (언론에서의) 정치적 문제다. 우리는 총만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적과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총을 지휘하는 것은 당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복잡성은 이곳에서 당을 건설하는 어려움과 연결되어 있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다.) 수에즈 운하 장악 이전부터 파타가 지닌 고유성은 스스로를 당이나 전선이라 부르기를 거부했다는 데 있다. 이는 한 무슬림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각을 버리지는 마십시오. 다만 지금 속한 조직을 떠나 우리 대열에 합류하십시오.” 파타가 말(word)로써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실제로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동안 아이디어들이 변한다는 것을 안다. 텔아비브로 가는 길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아이디어들이 변할 것이고, 그것이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정치적 전선과 예술적 전선

    우리는 공부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교훈을 얻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기록해 이곳이나 세계의 다른 곳에 전하려고 왔다. 거의 1년 전, 우리 중 두 사람이 민주전선을 조사하러 왔다. 그 뒤 다른 한 사람이 파타를 찾아갔다. 우리는 그들의 문헌과 강령을 읽었다. 프랑스의 마오주의자로서 우리는 파타와 함께 영화를 만들기로 했고, 제목은 〈승리까지 Jusqu’à la Victoire〉가 될 예정이었다. 우리는 영화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혁명’이라는 말을 직접 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제목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사고와 행동 방식〉이다. 민주전선 동지들과 나누는 대화는 파리의 무장세력들과 나누는 대화와 같다.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들도, 우리도 마찬가지다. 파타와는 다르다. 팔레스타인 혁명을 어떤 이미지로 만들어야 하는지, 그 이미지에 어떤 사운드가 동반되거나 충돌되어야 하는지를 지도자와 논의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긍정적이다. 그것은 이론과 실천 사이의 모순, 정치적 전선과 예술적 전선 사이의 모순을 구체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

    암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우리는 “전부”라고 답했다. 우리는 아슈발, 민병대의 훈련, 남부와 북부와 중부의 기지들을 보았다. 순교자 학교와 장교 학교, 의료 시설도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이제 무엇을 촬영하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우리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습니까?”
“아니요, 먼저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공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RPG에 쓸 탄약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미지와 사운드가 많지 않습니다. 제국주의자들(할리우드)이 그것들을 망가뜨리거나 파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낭비할 수 없습니다. 이미지와 사운드는 이데올로기의 탄약입니다. 적의 아이디어를 무너뜨리는 데 그것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습니다.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습니까?”
우리는 “아부 하산과요”라고 답했다.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페다인』 창간호에 실린 그의 글 한 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말했다. 정치적으로. 예를 들어 이런 말을 했다. “인민의 군대는 정교한 레이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쌍안경과 무전기를 든 어린이 1만 명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혁명적 이미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집트 군대는 인민의 군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곳에는 어린이 1만 명 대신 소련 교관 1만 명이 있다.


귀 가까이에서 울리는 총탄

    아부 하산은 이런 말도 했다. 알 아시파의 첫 총탄은 농민들의 귀 가까이에서 발사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땅이 해방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혁명적 사운드다. 이런 논의를 통해 우리는 그저 ‘현실적’이라고 불릴 뿐 아무 의미도 없고, 이미 아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드는 대신,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에 정치적 관계를 세울 수 있다. 이미 아는 것을 다시 말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어떻든, 낡은 것 뒤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혁명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길고 험난한 일이다.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혁명에 관한 영화가 그 혁명의 어려움과 마주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 영화가 왜 미국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겠는가? 파타가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장악하고 있어서? 아니다. 파타는 암만의 영화관조차 장악하지 못했다. 그들은 암만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매일 밤 어두운 영화관에서는 제국주의의 타락한 산물이 대중의 눈을 멀게 한다. 다행히 6월 위기가 발생한 다음 날 아침, 통합사령부는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함으로써 대중의 눈을 다시 뜨게 할 수 있었다. 혁명적 정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영화는 현시점 프랑스에서 혁명의 부차적 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부차적 과제를 우리의 주된 활동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이 부차적 과제와, 이곳에서 이스라엘에 맞선 무장투쟁이라는 혁명의 주된 과제 사이의 모순을 살펴보자. 영화와 팔레스타인 혁명의 다른 부차적 과제들 사이에 있는 모순도 살펴보자. 특정한 순간, 특정한 장소에서는 부차적인 것이 주된 것으로 바뀐다는 점을 보아라. 우리가 정치적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바시나 아라파트, 하와트메를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불길 속을 헤쳐 나가는 ‘새끼 사자’의 스펙타클한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 사운드와 사운드 사이의 관계,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의 관계,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 혁명 안에서 무장투쟁과 정치적 활동이 맺는 관계를 드러내야 한다. 

    각각의 이미지와 각각의 사운드, 각각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은 힘들 사이 관계의 순간이다. 우리의 과제는 그 힘을 공동의 적인 제국주의, 곧 월스트리트, 펜타곤, IBM, 유나이티드 아티스츠(트랜스아메리카 코퍼레이션의 오락 사업) 등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파타가 6월 위기 동안 정보의 영역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타임스, 일 메사제로, 르 몽드, 르 피가로는 자본주의 유럽 국가들에 무엇을 전했는가? 요르단 반동 세력의 치명적인 도발에 대중이 어떻게 대응했는가? 아니다. 파타가 그 대응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이끄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이 신문들은 동유럽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들처럼 야셀 아라파트의 역할은 축소하고 조지 하바쉬를 과도하게 부각했다. 혁명적 정보 활동에 종사하는 투사로서 우리의 과제에는 그런 일이 왜, 어떻게 벌어지는지 분석하는 것도 포함된다. 제국주의에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단결하여 세워나가는 것을 다시 한번 무너뜨리려는 시도뿐 아니라, 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의 대중의 눈에 그 해방투쟁의 의미를 흐려놓는 일도 필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팔레스타인 혁명을 베트남 혁명과 마찬가지로 귀중한 촉매제로 여기는 그 대중에 속한 혁명적 세력에 또 한 차례 타격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오늘날 아부 이야드가 파타와 대화 형식으로 쓴 글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이것은 아마 작은 패배일지 모르지만, 패배를 패배로 분석할 혁명적 정직성이 있어야 한다. 투쟁, 실패, 새로운 투쟁, 새로운 실패, 승리할 때까지 새로운 투쟁. 중국 동지들에 따르면 이것이 인민의 논리다. 파타의 지도 아래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는 팔레스타인 인민의 논리도 이와 같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영화에서, 그리고 당신의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것이다. 영화는 어디에서 상영될 것인가? 그것은 실제 투쟁의 상황에 달려 있다. 남부 레바논의 어느 마을 길가에서 상영할 수도 있다. 창문 두 개 사이에 천을 걸고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버클리의 학생들 앞에서, 코르도바나 리옹의 파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아밀카르 카브랄의 학교에서 상영할 수도 있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대중 속에서 앞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상영될 것이다. 왜인가? 이 영화가 투쟁의 힘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들 사이의 관계

    투쟁하는 세력의 다른 구성원들도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자신의 투쟁에 도움이 되는 순간에, 이 영화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을 건너는 페다이의 이미지가 나온다. 이어서 난민촌에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파타 여성 민병대원의 이미지가 나오고, 그다음에는 훈련하는 ‘새끼 사자’의 이미지가 나온다. 이 세 이미지는 무엇인가? 하나의 총체다.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가치를 갖지 않는다. 감상적 가치나 정서적 가치, 혹은 사진으로서의 가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 가치는 없다. 세 이미지 가운데 어느 하나가 정치적 가치를 가지려면 다른 두 이미지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때 중요한 것은 이미지를 어떤 순서로 보여주는가이다. 각각의 이미지는 하나의 총체적인 정치에 속하며, 그것들을 배열하는 순서는 정치 노선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파타의 노선을 따른다. 따라서 이미지를 다음 순서로 배열한다. (1) 작전 중인 페다인 (2) 학교에서 일하는 여성 민병대원 (3) 훈련하는 어린이들. 이는 (1) 무장투쟁 (2) 정치적 활동 (3) 장기 인민전쟁을 뜻한다. 결국 세 번째 이미지는 앞선 두 이미지의 결과다. 다시 말해 ‘무장투쟁’ + ‘정치적 활동’ = ‘이스라엘에 맞선 장기 인민전쟁’이다. 또한 ‘(투쟁을 시작하는) 남성’ + ‘(스스로의 혁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여성’이 팔레스타인을 해방할 아이, 승리의 세대를 낳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끼 사자’나 ‘꽃’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이것이 승리의 세대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어떻게 그런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스라엘 어린이는 같은 방식으로 보여줄 수 없다. 시온주의 어린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미지들과 다르다. 더 나아가, 이미지에 관해 말해서는 안 된다. 이미지들의 관계에 관해 말해야 한다.


레바논인 할리우드 하수인들

    이미지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이미지가 현실이라고 믿게 만든 것은 제국주의다. 하지만 상식 선에서 생각해도 이미지는 다른 무엇도 아닌 이미지(image)이기에 상상적인(imaginary) 것이다. 반영이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상처럼. 현실인 것은 우선 당신이고, 그다음으로는 당신과 그 상상적인 반영 사이의 관계다. 그 다음으로는 현실인 것은 당신이 거울에 비친 당신의 여러 모습들 사이에서 당신이 설정하는 관계, 혹은 당신이 찍힌 여러 사진 사이에서 당신이 설정하는 관계다. 예를 들어 당신이 스스로에게 “나는 아름답다”거나 “나는 피곤해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때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오직 몇 개의 반영 사이에 단순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뿐이다. 한쪽에서는 좋아 보이고 다른 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습을 비교한다. 비교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그다음에야 “피곤해 보인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관계를 정치적으로 설정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노동과 투쟁의 관점이다. 제국주의는 세계의 이미지들이 상상적인 것인데도 현실이라고 믿게 함으로써,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막으려 한다. 곧 이미지들 사이에 현실(정치적) 관계를 설정하는 일, 훈련하는 아슈발의 이미지와 강을 건너는 페다인 사이에 현실적인(정치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일을 막으려 한다. 유일한 혁명적 현실은 바로 그 관계의 (정치적) 현실이다. 정치적이다.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방금 설명한 이미지들의 연쇄는 권력이 총구 끝에서 나온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우리가 강을 건너는 페다이나 글을 배우는 농민, 훈련하는 아슈발을 보여주는 데 만족하기를 바란다. 제국주의는 그런 이미지에 반대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또는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자들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매일 BBC, 라이프, 레스프레소, 슈피겔을 통해 배포한다. 한편에는 (배를 채우기 위한) UNRWA가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할리우드와 그 영화계에서 하수인 노릇을 하는 레바논인과 이스라엘인이 있다. 제국주의는 우리가 앞서 말한 세 이미지 사이에 관계를 맺지 않도록 가르쳤다. 혹 관계를 맺더라도 자신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특정한 순서로 배열하게 만들었다. 


사상과 모순

    현재 반제국주의 정보 활동의 영역에서 일하는 투사로서 우리의 과제는 이 영역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언론, 라디오, 영화, 음반, 책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강요한 이미지의 연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부차적인 과제지만, 우리는 그것을 주된 활동으로 삼고 그에 따르는 모순을 해결하려 한다. 예를 들어 부차적 전선에서 싸우다 보면 다른 동지들과 부딪히곤 한다. 이곳 파타의 동지들을 예로 들면, 그들은 주된 전선인 무장투쟁에 관해서는 앞서 있고 올바른 생각을 지녔지만, 부차적 전선인 정보 활동에 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는 이 모순을 인민 내부의 모순으로 다루며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우리와 적 사이의 모순이 아니다. 모순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그 모순을 해결하는 길 위에서 진보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제 앞서 세 이미지의 연쇄를 제작하는 문제를 제기했으니, 그것을 배급하는 문제도 더 올바르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상상적인) 이미지들 사이에 현실의 (모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미지를 보고 듣는 사람들도 그것들과 현실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영화를 보는 일은 그들의 삶과 현실 속 순간이 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정치적 현실이다. 억압받는 농민, 파업 중인 노동자, 저항하는 학생,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든 페다인에게 말이다…… 우리가 “스펙타클 타도, 정치적 관계 만세!”라고 말할 때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와 입술

    이렇게 해서 문학과 예술은 레닌이 원했듯 혁명이라는 기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은 나사 하나가 될 수 있다. 요컨대 부상당한 페다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상처가 가난한 농민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길고 험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이 발명된 이래 제국주의는 자신이 억압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영화를 만들지 못하도록 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억압받는 대중에게 현실을 감추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어온 것이다. 우리의 과업은 그런 이미지들을 파괴하고, 인민에게 제공하여 그들 스스로가 그들의 차례에 사용할 수 있는, 더 단순한 이미지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길고 험난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곳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팔레스타인 인민이 이스라엘에 맞서 벌이는 장기전의 일부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 투쟁이 제국주의와 그 동맹 세력에 맞선 다른 곳의 모든 인민전쟁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입술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마치 어머니와 아이처럼. 마치 팔레스타인의 땅과 페다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