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가 소피 리프크네히트에게
박규재 옮김
1917년 5월 2일, 브론키에서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소뉴샤!
어제 5월 1일에 당신의 다정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와 이틀 전부터 비치기 시작한 햇살이 상처 입은 제 마음을 얼마나 위로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저는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조금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 햇살만 그대로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 저는 거의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습니다. 덤불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제 작은 정원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온갖 보물들을 찾아냅니다. 자, 들어보세요. 어제 5월 1일에 누굴 만났는지 맞혀보세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멧노랑나비 한 마리였습니다! 저는 너무도 기뻐서 가슴이 몹시 뛰었습니다. 그 나비는 제 소매에 날아왔습니다. 저는 보라색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아마 그 색깔에 이끌린 듯합니다. 그러고는 훌쩍 위로 날아올라 담장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오후에는 예쁜 깃털 세 개를 발견했습니다. 붉은꼬리딱새의 짙은 회색 깃털 하나, 노랑멧새의 황금빛 깃털 하나, 그리고 밤꾀꼬리의 회황색 깃털 하나였습니다. 이곳에는 밤꾀꼬리가 많습니다. 저는 부활절 일요일 이른 아침에 처음 밤꾀꼬리의 노래를 들었고, 그 이후로 매일 제 작은 정원의 큰 은백양나무로 날아옵니다. 그 깃털들은 예쁜 파란 상자에 담아 제 수집품으로 모아 두고 있습니다. 바르님슈트라세의 안뜰에서 주운 비둘기와 닭의 깃털들, 그리고 쥐트엔데에서 얻은 아주 아름다운 어치의 푸른 깃털도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수집품은 아직 아주 작지만, 저는 가끔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누구에게 줄지도 이미 정해 뒀답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가 늘 거닐며 지나가는 담장 옆에서 완전히 숨어있던 제비꽃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 작은 정원의 유일한 제비꽃입니다. 괴테는 이렇게 썼지요.
“들판에 제비꽃 하나 피어 있었네,
제 몸을 굽힌 채, 아무도 모르게,
작고 사랑스러운 제비꽃!”
제 몸을 굽힌 채, 아무도 모르게,
작고 사랑스러운 제비꽃!”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꽃을 여기 당신께 보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살며시 입맞춤을 했습니다. 제 사랑과 안부를 함께 전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생기가 있을 때 도착할까요? …
그리고 오늘 오후에는 올봄 첫 뒤영벌을 만났습니다! 반짝이는 새까만 털외투에 황금빛 띠를 두른, 아주 커다란 녀석이었습니다. 낮고 굵은 음으로 윙윙거리며, 먼저 제 외투에 날아왔다가, 이내 큰 곡선을 그리며 안뜰 위로 높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밤나무의 잎눈은 아주 커지고, 분홍빛으로 부풀어 올라 수액에 젖어 반짝입니다. 며칠 안에 작은 초록 손처럼 보이는 잎들을 내밀겠지요. 기억하시나요, 작년에 우리가 어린 잎이 막 돋은 그런 밤나무 앞에 서 있었던 일을? 그때 당신은 익살스러운 절망 속에서 외쳤지요. "르로자! (당신은 R을 저보다 더 세게 굴리죠), 어떻게 해야 하죠? 이 기쁨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리고 또 하나의 발견이 오늘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지난해 4월,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어느 날 아침 10시에 급히 전화를 걸어 두 분을 식물원으로 불렀지요. 밤꾀꼬리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작은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곳, 빽빽한 덤불 속 돌 위에 조용히 숨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꾀꼬리의 노래가 끝난 뒤, 갑자기 단조롭고 애잔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략 이렇게 들렸습니다. "글리글리글리글리크!" 저는 그것이 어떤 늪지의 새나 물새일 거라고 말했고, 카를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도무지 그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곳 근처에서 이른 아침에 바로 그와 같은 애잔한 울음소리를 다시 들었습니다. 마침내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고 싶은 조바심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늘 그것을 밝혀낼 때까지 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물새가 아니라 딱따구리의 한 종류였습니다. 참새보다 조금 큰 새로, 위험에 처하면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목을 비트는 동작으로 적을 놀라게 하려 하기 때문에 '목을 비트는 새'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이 새는 오로지 개미만을 먹고 사는데, 개미핥기처럼 끈적한 혀에 개미를 모아 붙입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그를 '오르미게로', 곧 '개미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에두아르트 뫼리케는 이 새를 소재로 유쾌한 시를 썼고, 후고 볼프가 그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 뒤로, 저는 마치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입니다. 이 사실을 카를에게도 알려줘요. 그도 기뻐할 것입니다.
무엇을 읽고 있느냐고요? 대부분 자연과학 서적입니다. 요즘은 식물과 동물의 분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독일에서 명금류가 줄어드는 원인에 대해 읽고 있었습니다. 점점 더 체계화되는 산림 경영과 정원 관리, 그리고 농업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자연적인 둥지 자리와 먹이 조건, 곧 속이 빈 나무와 휴한지, 덤불, 정원 바닥의 마른 낙엽을 하나씩, 차례로 없애 버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며 저는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간을 위한 노래가 사라진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힘없는 이 작은 생명들이 조용히, 그러나 멈출 수 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이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것은 제가 취리히에서 읽었던 니콜라이 지베르의 러시아어 책,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몰락에 관한 책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들 역시 문명인들에 의해 조금씩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조용하고도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아마 제가 병들어 있어서, 요즘은 모든 일이 이처럼 깊이 저를 흔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저는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한 어떤 새나 다른 동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제 마음은 이런 작은 정원이나, 벌들과 목초 사이의 들판에서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전당대회에 있을 때보다 말입니다. 이런 말은 당신께는 해도 되겠지요. 당신은 그것을 곧바로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저는 그래도 제 자리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거리의 싸움에서든, 감옥에서든 말입니다. 그러나 제 가장 깊은 자아는 '동지들'보다 박새들에게 더 가까이 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자연 속에서, 많은 내면적으로 파산한 정치가들처럼, 도피처나 휴식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도 저는 곳곳에서 많은 잔혹함을 보며 괴로워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 봄, 들판을 산책하고 돌아오던 조용한 빈 거리에서, 바닥에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몸을 굽혀 보니, 소리 없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쇠똥구리 한 마리가 등을 뒤집힌 채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버티고 있었고, 수많은 작은 개미들이 그 위를 들끓으며 그를 산 채로 먹어치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름이 끼쳐 손수건을 꺼내 그 잔인한 것들을 쫓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몹시 뻔뻔하고 끈질겨서 한동안이나 싸워야 했습니다. 마침내 그 불쌍한 생물을 구해 멀리 풀밭에 옮겨 놓았을 때는, 이미 다리 두 개가 먹힌 뒤였습니다. … 저는 결국 그에게 과연 옳은 일을 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괴로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요즘은 저녁 무렵의 어스름이 아주 길어졌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쥐트엔데에서는 지빠귀가 많았는데, 여기서는 이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겨울 내내 한 쌍에게 먹이를 주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쥐트엔데에 있을 때는 이 시간쯤 저녁이면 거리를 천천히 거닐곤 했습니다. 마지막 보랏빛 햇빛이 남아 있을 때, 가로등의 분홍빛 가스불이 갑자기 켜지면 참 아름다웠습니다. 어스름 속에서 그 불빛은 아직도 낯설어 보여, 마치 스스로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렵이면 거리에는 늦게 도착한 수위의 부인이나 하녀의 희미한 모습이 분주히 스쳐 지나가곤 했습니다. 빵집이나 잡화점에 급히 들러 무언가를 사 오려는 길이었겠지요. 제가 알고 지내던 구두장이 아이들도 어둠 속에서 길에서 놀다가, 모퉁이 쪽에서 단호한 목소리로 집에 들어오라는 부름을 듣곤 했습니다. 그 시간에는 늘 어느 지빠귀 한 마리가 잠을 이루지 못해, 갑자기 버릇없는 아이처럼 날카롭게 울거나 잠결에 지저귀며 소리를 내고는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날아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길 한가운데 서서 첫 별들을 세며, 부드러운 공기와 어스름 속을 쉽게 떠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낮과 밤이 서로 포개지듯 조용히 맞닿아 있는 그 시간 속에서 말입니다.
소뉴샤, 곧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카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편지까지 안녕히,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새.
당신의 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