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손버트 네 편의 영화≫ (w. James Pearson)
{Four by Warren Sonbert}
Guest Programer: James Pearson of Gartenberg Media
본 상영은 가르텐버그 미디어의 팀원 제임스 피어슨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워렌 손버트가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의 초기작 두 편과 더불어, 실험영화사의 정전으로 손꼽히는 경이로운 두 작품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11월 20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Hall of Mirrors (1966, 7‘)
Amphetamine (1966, 10’)
Carriage Trade (1972, 61‘)
Friendly Witness (1989, 22’)
{Four by Warren Sonbert}
Guest Programer: James Pearson of Gartenberg Media
본 상영은 가르텐버그 미디어의 팀원 제임스 피어슨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워렌 손버트가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의 초기작 두 편과 더불어, 실험영화사의 정전으로 손꼽히는 경이로운 두 작품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11월 20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Hall of Mirrors (1966, 7‘)
Amphetamine (1966, 10’)
Carriage Trade (1972, 61‘)
Friendly Witness (1989, 22’)
• 프로그램 노트
본 상영은 아방가르드 필름메이커 워렌 손버트(Warren Sonbert)의 주요 작품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대 시절 만든 두 편의 초기작 〈Hall of Mirrors〉(1966)와 〈Amphetamine〉(1966)은 1960년대 뉴욕의 예술가 친구들을 담은 기록이자, 동시에 손버트 특유의 낭만적이며 댄디한 감수성이 드러나는 영화적 초상들이다.손버트는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Gregory Markopoulos)의 친구이자 제자로서 영화적 수련을 시작했다. 마르코풀로스의 영향은 손버트가 초기작에서 시도한 생략 편집(elliptical editing)의 리듬 속에서 뚜렷하게 감지된다. 또한 손버트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팩토리를 자주 드나들던 인물 중 하나로, 〈Hall of Mirrors〉에는 시인이자 워홀의 슈퍼스타인 르네 리카르(Rene Ricard)와 제라드 말랑가(Gerard Malanga)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뉴욕대학교 수업 과제로 제작된 7분 길이의 3부 구성 작품(triptych)이다. 학생들에게는 1947년작 할리우드 누아르인 〈살인 행위〉(1948)의 편집용 필름들을 재구성해 내러티브를 만들어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손버트는 내러티브적 연속성을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그는 필름 조각들을 팝송과 결합시켜, 짧은 분량이지만 밀도 있는 영화적 3부 구성의 작품을 완성해냈다.
18세의 손버트가 만든 〈Amphetamine〉은 1960년대 뉴욕의 한 아파트 안에서 친구들이 키스를 나누고 약물을 복용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뤼미에르 영화처럼 단도직입적이고 꾸밈없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들의 행위를 판단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후 워홀의 〈첼시 걸즈〉에 등장할 유사한 장면들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졌다.
사실 손버트가 본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가장 자주 언급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와 작가주의 감독들이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더글라스 서크, 빈센트 미넬리, 버드 보티커 같은 감독들이 그러하다. 〈Amphetamine〉에는 히치콕의 〈현기증〉을 연상시키는 여러 장면이 등장하는데, 특히 두 남성이 키스하는 동안 360도로 회전하는 쇼트는 제임스 스튜어트와 킴 노박의 키스에 대한 퀴어적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센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손버트는 이전 영화들의 푸티지를 재사용함과 동시에,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촬영한 새로운 장면들을 사용하여 광범위한 무성 영화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가 ‘다의적 몽타주(polyvalent montage)’라 부른 편집 방식으로 특징 지어진다. 손버트는 빛과 그림자, 구도, 움직임, 전경과 후경,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편집점을 내러티브의 논리로부터 분리시켰다. 관객은 각자의 인식과 감각을 통해 의미의 연결조직을 구성하도록 유도된다. 〈Carriage Trade〉는 그러한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구현된 첫 작품으로, 이후 17년간 이어지는 그의 무성 몽타주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생애 말기에 손버트는 다시 사운드를 영화로 불러들이며 〈Friendly Witness〉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Carriage Trade〉의 짝을 이루는 영화로, 여러 나라와 문화, 인물들을 위계적인 연상의 미로 속에 엮어낸다. 손버트의 몽타주 영화들은 세계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영화적 엽서이자 백과사전으로, 노동하는 사람과 놀이하는 사람, 이동수단, 공적 의식과 사적 의례, 시위, 사고, 장엄함, 우연의 만남, 연인의 사랑, 그리고 죽음 같은 반복되는 모티프들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손버트는 ‘다이어리 필름메이커’라는 명칭을 거부했으며, 특히 후기 작업에서는 동성애자 예술가로서 이성애자 중심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탐구하기 위한 형식적 시도를 이어나갔다. 그의 후기 영화들은 그가 존경했던 더글러스 서크의 1950년대 테크니컬러 영화들처럼, 노동, 가족, 결혼, 계급 등 사회적 구조에 개인(그리고 예술가)의 자유와 진정성이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손버트는 이러한 예술가의 자의식을 자신만의 리드미컬한 몽타주와 결합시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대(ideological expectations)와 마주하고, 그 속에서 유희하는 독자적인 영화 언어를 구축한다.
- guest programmer James Pea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