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우정:〈반다의 방〉

페드루 코스타 〈반다의 방〉소개문

이광호 작성

철거 예정지에 거주하는 곤궁한 이들의 주변화된 현실Reality을 통속적으로 고발하는 대신, 오직 그들이 놓인 지금 이곳의 생동하는 현존Actuality을 포착하는데 주력함에도 <반다의 방>에 어떤 따뜻함이 녹아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안토니우 헤이스와 마르가리다 코르데이우가 <트라스-우스-몽투스>(1976)과 <아나>(1982) 등에서 선보인 바 있는 친밀함의 유산이 페드루 코스타에게 남긴 흔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산천초목 시골 마을의 주민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풍속과 옛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질학적 태고의 시학을 스크린에 유장하게 구현했던 헤이스-코르데이우의 방법론은, 포크레인 엔진과 공사 소리가 우글거리는 빈민촌의 골목과 회벽 앞에서 결코 똑같이 구현될 수 없다. 이에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쥔 페드루 코스타는 폰타이냐스 지역의 주민들과 시간을 보내며 150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하기에 이른다. <반다의 방>을 이루는 중추는 베르메르의 회화를 연상케하는 키아로스쿠로적 조명이나 일상생활의 몸짓과 말을 포착하는 관찰적 시선만큼, 그 시각적 테마를 끌어올린 페드루 코스타와 리스본 빈민가 폰타이냐스 지역 주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친밀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희뿌연 담배 연기가 있다. 마찰 섞인 기침이 있다. 끈적한 가래가 있다. 깡마른 팔다리와 구부정한 어깨가 있다. 무자비한 욕설이 있다. 침묵이 있다. 칭얼거리는 아이들과 멍멍 짖는 개들이 있다.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있다. 열린 문을 오가는 이웃 주민들, 서로를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가 있다.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방들이 있다. 빛과 그림자가 오가는 골목들이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회벽은 연약한 그들을 지탱하고, 어둠은 그 소란스러운 실체들이 놓인 자리를 새까맣게 뒤덮는다. <뼈>(1997)까지 고수하던 브레송의 엄숙주의적 무드를 폐기한 페드루 코스타는 DV카메라 한 대를 들고 이 현장에  뛰어들었다. 수 시간에 걸쳐 기록된 인물들의 일상 촬영본을 바탕으로 탄생한 극단적 유물론의 세계. 보이지 않는 시간이 쌓아올린 그 아웃테이크의 세계는 카메라를 우정의 도구로 탈바꿈한다. 필름Film이 은유가 되어가기 시작할 무렵, 운명처럼 2000년에 공개된 신세기 영화사의 중대한 첫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