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 편지

장-마리 스트로브

박규재 옮김
프란스 판더스타크(Frans van de Staak)의 죽음을 기리며
2001년 6월

프란스 판더스타크는 너무 어린 나이에 죽었고 그가 (암스테르담의)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프랑스인 장-클로드 루소와 독일인 페터 네슬러와 함께 유럽의 3대 시네아스트 중 한 명 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그의 영화가 유일하게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를 계승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엘리오 비토리니가 1947년 6월 27일 금요일 프랑스어로 레 레트르 프랑세즈에 썼던 것처럼 “파시즘, 즉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폭력으로 모든 문화를 파괴하려 한다.

프란스 판더스타크는 1965년 뮌헨에서 화해불가를 수급하기 위해 내게 편지를 썼고 (당시 그는 16세였을 것이다.) 그는 1965년 암스테르담의 한 극장에서 3주 동안 영화를 상영하는 데 성공했다. 위대한 신이시여, 우리는 이제 어찌 되리오! 아니면 사부아 보좌신부가 말했듯 이렇게 말하겠지. 오 위대한 존재여! 오 위대한 존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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